조씨는 “혈관이 안 보이니까 손으로 만져가면서 하는데 찌른 데 또 찌르고, 옆에 한 번 더 찔러보고 하면 30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이제 아이가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고 주사를 놓기 전에 알코올 솜으로 손등을 닦는 것만으로도 자지러지게 운다”고 말했다.
김경화(52)씨의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혈우병 환자다. 돌이 지난 후 혈우병 진단을 받아 17년째 일주일에 두 번씩 혈관주사를 맞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는다. 주사 자체는 눈 감고도 놓을 수 있지만, 워낙 장기간 맞아 혈관이 가늘고 딱딱해진 게 문제다. 이제는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몇 번씩 찌른 후에야 주사를 놓을 수 있다.
헴리브라는 현재 A형 혈우병 환자 중에서도 ‘항체 환자’에게만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A형 혈우병 환자는 크게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항체 환자’와 내성이 없는 ‘비항체 환자’로 구분된다. 기존에 맞던 정맥주사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효과를 볼 수 없는 항체 환자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헴리브라를 맞을 수 있지만 비항체 환자들은 헴리브라를 맞으려면 거액의 비용을 내야 한다. 2019년 기준 국내 A형 혈우병 환자 1746명 중 비항체 환자는 1589명으로 약 91%를 차지한다.
조은별씨는 “현재 기존 치료제를 투약하는 데 한 달에 15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비급여로 헴리브라를 맞을 경우 480만원이라 3배 가까이 차이가 나 맞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화씨는 “생활이 넉넉한 집들은 아이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급여로 맞거나 비항체 환자에게까지 투여가 허용되는 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한다”라며 “우린 그럴 형편이 안 돼 온 가족이 급여화가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주사에 대한 공포도 줄었다고 한다. 배씨는 “치료제를 바꾼 지 1년 반이 넘었는데 아이가 병원에 가면 지금도 항상 ‘짧은 바늘(헴리브라)이야, 힘든 바늘(기존 혈관주사 치료제)이야’ 이렇게 물어본다. 짧은 바늘이라고 하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맞곤 한다”고 말했다. 배씨는 “이미 우리 아이는 급여 적용을 받고 있지만 비항체 환자 부모들의 심경을 떠올리면 목소리를 안낼 수가 없다. 한국만 항체 환자, 비항체 환자를 나눠 급여 적용을 하는데 정부가 시간 끌기식의 검토를 멈추고 급여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비항체 환자에 대해 급여화가 이뤄졌다.
심평원 관계자는 “2021년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기존에 쓰고 있는 8인자 제재에 비해 헴리브라가 고가라 재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구체적인 급여 대상 범위나 우선순위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후 임상 전문가 자문회의도 3차례 정도 진행해 검토를 이어갔다”라며 “오는 9일 있을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약평위를 통과하게 되면 건강보험공단과 가격 협상을 하고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약가가 고시된다.